비밀의 선물상자 - 레타


요즘, 린이 이상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이상 현상은 수업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수 학생으로 알려진 바로 그 마츠오카가,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는 일이 생겼다. 수업 외에 두 사람만 있는 201호실에서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혹은 소스케에게 장난을 걸어오던 그였는데 휴대폰으로 뭔가를 찾으며 가만히 앉아있기만 한다. 이름을 부르면 반색하며 화들짝 놀라기까지. 두 번째 이상 현상은, 소스케가 「동생인데 연락 좀 해라」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을 때도 귀찮다며 듣지도 않던 녀석이 고우와 통화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이와토비 아이들의 전화는 소스케가 있든 말든 방에서 대충 받더니 웬일인지 고우와의 대화는 매번 바깥에 나가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훈련을 빠지고 방과 후에 외출을 다녀오는 일이 잦아졌다. 이건 성실의 아이콘 마츠오카 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여름 대회 이후 부 활동의 관리는 후배들에게 넘겼지만, 훈련에는 매일같이 성실하게 임하는 그였는데. 곧 졸업을 앞두고 잠시 바람이 들었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아는 린은 그럴 리 없는 사람이었다. 소스케는 한동안 속으로 묵혀두었던 의문을 저녁밥을 먹으며 자연스레 꺼내 보기로 했다.


“야, 린.”

“어?”

“너 무슨 일 있냐?”

“뭐가?”

“아니, 요즘 너 이상하잖아.”

“어,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야?”


야마자키 소스케는 기본적으로 직감이라는 감각과는 거리가 먼, 다소 무딘 남자였지만 이건 역시 뭔가가 있다. 옛날부터 린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으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버릇을 손바닥 보듯 뻔히 알고 있는 소스케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수업 끝나고 부 활동도 빠지고 어디 가?”

“그, 그냥… 나도 기분 좀 내고 싶어서 그랬던 것뿐이야!

“너 평소에 훈련 빠지거나 그런 적 없었잖-”

“그런 것까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잖아!”

“아…”


날카롭게 내지른 말 한마디에 순간 테이블 위에는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얼굴이 새빨개진 린은 씩씩거리기만 할 뿐 그 뒤의 대화를 잇지 못하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먼저 간다.”

“…”


영문도 모른 채 혼자 남겨진 소스케 앞에는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느 때와 달리 혼자인 식사 시간, 누군가 다급하게 등을 두드렸다.


“소스케 선배, 소스케 선배-!”

“무슨 일인데 이렇게 야단법석이냐, 미코시바.”

“에헤헤, 내일이 크리스마스잖슴까! 그래서 조금 이따가 다 같이 수영부의 모두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려고 준비 중인데-”


파티, 파티라. 며칠 전의 어색한 그것만 없었더라면 다 같이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을 텐데. 소스케와 린의 침묵의 시간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바깥이 모두 크리스마스로 떠들썩한 이때, 이 전국적인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꽃피웠을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이후 거의 입을 떼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며칠을 보냈다. 후배들과는 종종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들 사이에 말이 오가는 일은 없었다.


“-두 분이 없으면 파티의 주역이 없잖슴까! 그런데 린 선배는 어디에 계심까? 소스케 선배와 린 선배 둘이 같이 있지 않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그게…”

“걱정 마십셔, 아이 선배에게 린 선배도 찾아오라고 연락하겠슴다!”


모모타로는 이런 일에 눈치가 없었다. 소스케가 채 말리기도 전에 모모타로는 니토리에게 전화를 걸어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자기 할 말을 우르르 늘어놓은 뒤 전화를 끊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은 얼굴로 밤의 파티 계획을 늘어놓는 그에게 소스케는 린과 싸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애당초 그 일이 싸웠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 늘 있는 사소한 말다툼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뒷맛이 찝찝한 그 느낌은, 그래, 섭섭함이라는 감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본 것만으로 자신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소꿉친구, 아니 이상으로 가장 가까운 연인 사이인 그에게 들어야 하는 말이「신경 쓸 필요 없다」라니, 그런 짧은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이였던가? 여태껏 이런 종류의 감정을 드러내온 적 없던 소스케도 이번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이후, 다시 만나서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인데.


“모모 군, 그렇게 빨리 전화를 끊어 버리면 어떡해….”

“아핫, 시작하기로 한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잖슴까! 린 선배도 같이 오셨슴까?”

“아, 저기- 린 선배! 빨리 오세요!”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멀리서 미적미적 걸어오는 품새와 살짝 찌푸린 미간에서 린이 지금 이 상황을 매우 귀찮아하고 있다는 것을 소스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 말다툼만 없었더라면 들러붙는 후배들을 귀찮아하는 척을 하면서도 즐겁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갈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근 사흘만에 맞은 시선이건만 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소스케와 달리 그는 여전히 부루퉁한 표정을 하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여전하네, 저 버릇은!


“린 선배, 어디 가 계셨던 검까! 다들 파티 준비 중임다! 소스케 선배, 린 선배, 아이 선배도! 이제 다들 모였으니 자아, 빨리 올라가요!”

“저기, 잠깐만, 모모 군…”


두 사람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는지 니토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눈치를 살폈지만, 모모타로의 기운에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떠밀려갔다.





“짜-잔-!! 선배님들 등장임다!!”

“오오, 오셨어요!”


수영부에, 게다가 남고라 칙칙한 녀석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 준비를 해 두었는지 방에는 이런저런 음식들이 꽤나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다. 온갖 과자와 음료수에, 저녁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굶주려 있을 이들을 위한 피자, 그럴싸하게 파티 느낌을 낼 수 있는 케이크도 준비되어 있었다.


“우옷치 선배, 저 무지 배고픔다-”

“너 아까 식당에서 배식 한 번 더 받는 걸 내가 봤는데, 대체 뱃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냐?”


모두가 왁자지껄한 이 파티에서 얼어붙어 있는 것은 오직 소스케와 린 두 사람 뿐인 것 같았다. 다들 크리스마스의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장난도 치는 이 사이에서, 모모타로의 말대로「주역」이어야 할 그들은 정작 며칠째 다섯 글자 이상의 말을 서로에게 한 적이 없었는데.


“히익!”


모모타로와 우오즈미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던 사이, 가운데에 끼어 있던 니토리의 새우등이 터졌다. 손에 들고 있던 컵에 든 음료수가 바닥에 쏟아지자 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죄, 죄송합니다아….”

“으악, 잔뜩 쏟아졌슴다! 휴지, 휴지!”

“이 방 주인 휴지 어디다 뒀어!”

“휴지 얼마 전에 다 쓴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짓을 하기에 그 많던 휴지가 보이질 않는 거야?”

“하긴 뭘 해! 그냥 사다 놓는 걸 까먹었던 거-”

“됐다, 내가 휴지를 가져오지. 우리 방이 여기서 제일 가까우니까.”


허둥지둥하는 후배들을 지켜보던 소스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평소답지 않게 조용한 린이 신경 쓰여 일어나고 싶던 참이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니토리와 역시 대인배 소스케 선배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모모타로를 뒤로 하고 파티가 열리던 방에서 잠시 빠져나왔다.





휴지를 어디다 뒀더라. 너저분한 물건이 굴러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린의 성격상 어딘가의 서랍장에 넣어놓았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인가…


“소스케 거기 열면 안 돼!”


책상 서랍장을 여는 순간, 린이 급하게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지만 서랍장 속의 물건은 이미 바깥으로 드러나 있었다. 소스케의 짐작대로 장 안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고, 그 옆에-


-주먹만 한 작은 선물 상자가 들어 있었다.


“…미치겠네.”

“며칠 만에 한다는 소리가 그 소리냐. 이게 네가 신경 쓸 거 없다던 그거야?”

“아니 잠깐만, 그건 내가-”


저도 모르게 무미건조한 톤으로 대답하고서는 스스로 놀랐다. 이게 무슨 대단한 상자기에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건지 심술궂은 마음마저 피어올랐다. 린이 뭐라고 말을 하건 말건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장식 없는 심플한 반지 한 쌍이 들어 있었다.


“린, 이건…?”

“하아…젠장…내가 직접 주려고 했는데! 서프라이즈로 불쑥 내밀려고 했더니,”


그때서야 흩어진 퍼즐 조각이 조금씩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서프라이즈라니! 과연 로맨틱 바보 린답기는 했지만 한 방에서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안하더니 입이 떨어지자 하는 말이 소스케에겐 조금 괘씸하게 들렸다.


“계속 그럴 것 까진 없었잖아.”

“어쩌다 보니 반응이 잘못 나가 버려서…준비했던 거 들킬까봐 그랬어. 미안하다.”

“타이밍 이상해.”

“나도 알아!”


이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기쁘기도 한 이 느낌을 표현하기란 그에게는 버거웠다. 조금 더 화를 낼까도 싶었지만 린의 반응이 너무나 그다워서 우습고 귀여웠다.


“새끼손가락에 끼는 거야. 나도 액세서리 종류는 잘 몰라서, 고우의 도움을 좀 받았지. 나하고 소스케한테는 장식 있는 디자인은 안 어울릴 거라며. 별로 비싼 건 아니야. 은반지니까…그냥, 같이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

“고우가 남자 반지에 대해서 어떻게 잘 알아?”

“이 자식,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미안, 미안. 어쨌든…고마워.”


아, 보통의 린이다. 며칠 동안 두 사람을 묶고 있던 무거운 공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들었다. 소스케는 작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반지 하나를 새끼손가락에 조심스레 끼웠다.


“사이즈 맞네, 눈대중으로 찍었는데. 역시 나는 소스케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

“헤에, 과연 그럴까?”

“지는 일 없으리라고 장담하지.”

“하, 그렇다면…!”


두 사람이 이유 모를 승부를 주장하고 있는 사이 방문이 또다시 벌컥 열렸다.


“소스케 선배, 뭐 가지러 간다고 하셔놓고 왜 안 오심까! 앗, 린 선배도! 빨리 다시 오세요, 곧 12시면 진짜 크리스마스임다!”

“크리스마스? 모-모, 내가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지, 이리 와 봐!”

“아얏, 아얏, 아야야야얏, 소스케 선배, 살려주십셔…!”

“중요한 순간에 끼어든 벌이다, 미코시바. 포기해.”


사소한 해프닝을 불러온 작은 선물상자는 조심스레 서랍에 다시 넣은 후, 멋대로 방에 쳐들어온 모모타로를 끌고나가는 린을 보며 소스케는 살짝 웃었다. 겨우 웃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