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freshknife



“싫어.”


린은 소스케의 강력한 거부를 예상하지 못한 듯 미간을 구겼다.


“왜?”


되묻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소스케는 묵묵히 책을 폈다. 어쭈, 책만 보면 잠드는 주제에 대화를 이렇게 끊으시겠다? 린은 소스케의 책상 쪽으로 걸어가 책을 덮어버렸다. 책 표지를 가린 린의 손등 위로 빳빳하게 핏줄이 섰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소스케가 린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는다. 갑자기 느껴지는 소스케의 체온에 린은 어쩐지 힘이 쭉 빠졌다.


“왜 싫으냐니깐.”

“귀찮아.”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몸만 오면 된대도?”


귀찮을 거 하나 없는 일에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게 의아했다. 린이 제안한 것은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겨울방학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수영부 몇몇 녀석들과 함께 졸업 전 마지막 파티를 즐길 셈이었다. 물론 파티의 주도자는 린이 아닌 모모타로였다. 방학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본가로 내려갈 줄 알았더니 기숙사에 좀 더 있다 가겠단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선배들이 졸업하기 전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빅 이벤트가 아니냐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니토리 역시 들뜬 모모타로를 말리지도 않고 발그레 한 볼을 하고 웃고 있는 걸 보니 말은 안 해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후배들을 어찌 그냥 둘 수 있으랴. 린은 오케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나온 자리에 소스케가 없었던 탓에 이제야 말을 전했더니 돌아온 것은 의외의 거절이었다. 딱히 그 날 다른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알고 있고 의외로 부원들과 노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타입도 아니라서 당연히 수락할 줄 알았다.


“이유를 말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야마자키 씨.”


린이 책 위에 올렸던 손으로 소스케의 뺨을 두어 번 톡톡 건드리자 소스케가 고개를 팩 돌려버린다.


“튕기는 거야?”

“시끄러워.”

“어차피 준비는 다른 녀석들이 할 거야.”

“싫─어.”


이번엔 아예 침대 위로 올라가 버리는 소스케였다. 다른 파티였다면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았을 텐데 부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파티라는 생각에 린은 괜히 발끈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인데 그것도 못해주냐?!”


버럭 소리를 질러도 묵묵부답. 침대 난간 사이로 보이는 소스케의 얄미운 엉덩이를 보며 린은 저거 딱 한 대만 때렸음 속이 시원하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누운 뒤태가 영락없이 덩치만 큰 어린애다.


“됐어, 그럼. 나 혼자 갈테니깐.”

“…불 꺼.”

저게 끝까지! 린은 2층 침대를 노려보며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스위치를 껐다.





“린 선배, 린 선배!”


모모타로가 아침부터 요란하게 린의 이름을 부르며 방문을 두드렸다. 진작 일어나있던 린은 저놈 또 시작이네 싶은 마음으로 문을 열었고 두 손 가득 전단지를 펄럭거리는 모모를 맞이했다.


“정신 사납다, 인마.”


눈앞에서 흔드는 전단지를 받아들자 '크리스마스 케이크 대할인'이라고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파티엔 역시 케이크! 근데 선배들이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고민 중임다!”

“글쎄, 난 단 거 안 좋아하니까 모모 니가 먹고 싶은 거로 골라도…”

“에잇! 안됨다! 이런 건 주인공이 골라야 한다구여!”


아니, 일단은 3학년 송별회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파티니까 주인공은 예수가 아닐까. 린은 그렇게 대꾸하고 싶은 걸 꾹 참고서 전단지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알록달록 예쁜 크리스마스 케이크들을 보니 단 걸 좋아하지 않는데도 구미가 당기긴 했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고민하는데 뒤에서 묵직한 소스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해다. 비켜.”


그 위압감에 린 옆에 달라붙어 신나게 조잘거리던 모모타로가 에에 하고 우는 소릴 내며 복도 쪽으로 몸을 옮겼다. 아침이라 저기압인가. 린은 제 옆을 지나 방문을 빠져나가는 소스케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어이, 아침부터 왜 기운이 없어?”


평소 같으면 아침 인사를 하던가 졸린다고 중얼거리기라도 할 텐데 대답도 없다. 오늘따라 덩치에 안 맞게 한껏 쭈굴거리며 힘없이 복도를 걷는 소스케의 뒷모습을 보며 린은 어안이 벙벙했다. 쟤가 정말 저번부터 왜 저런담. 린의 당황스러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모타로는 얼른 케이크나 결정하자며 린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어어, 그럼 난 이거.”


대충 아무거나 보이는 걸 손가락으로 찍었더니,


“예─스! 사실 저도 이게 먹고 싶었는데 린 선배랑 저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거 같슴다! 고우 씨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걸까나! 그럼 오늘 이거 먹는 거예요, 이거! 네? 이거!”


라며 난리다.


“그래, 그래.”


고우 부분은 정정해 주려다 말았다. 아무래도 힘없이 사라진 소스케가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이쯤 되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우울한 거 같은데. 원체 티를 안내던 녀석이 저렇게 우울한 티를 팍팍 내니 린으로서는 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로 침울한 걸 보면 뭔가 큰일인 거 같은데 물어봤자 울리기 싫다며 숨길 게 뻔하다. 내가 좀 울면 어때서. 그냥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바보.”


입안이 쓰다.





사메즈카 수영부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이루어졌다. 기숙사 휴게실을 화려하게 장식한 리본과 풍선을 보니 니토리의 의견이 엄청나게 반영된 거 같았다. 사내놈들 솜씨라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느낌이 귀여워서 린은 피식 웃고 말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직 크리스마스는 30분 남았거든?”

“1년 동안 수고하셨슴다!”

“이거 송년회냐?”

“비슷한 거 아냐?”

“아무렴 어때.”


바보들의 대화도 아니고, 이거 원. 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우오즈미의 뒤통수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종이컵을 들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애들이다. 어수선하게 늘어놓은 과자들 사이로 린이 골랐던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초를 꽂은 채 반짝이고 있었다.


“부장! 부장이 케이크 컷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케이크 위로 올렸던 칼을 거두고 자신에게 내미는 미나미에게 린은 손사래를 치며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목 좀 축이고. 너희끼리 먼저 먹어.”

“넵!”

“미나미 선배! 여기, 초콜릿 올라간 부분 저 주시면 안됨까?”

“이 건방진 것. 알았다.”


고작 한두 살 차인데 왜 이렇게 귀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여동생인 고우와 또래인 아이들이라 그런 건가. 린은 음료수를 홀짝이며 자리를 옮겼다.


“인상 좀 펴지?”


구석에 의자 몇 개를 나란히 놓고 드러누운 소스케의 배에 장난스럽게 앉아버린 린이 엉덩이를 움직이며 소스케를 괴롭혔다. 윽 소리를 내며 괴로워하던 소스케가 린의 등을 손으로 밀어버린다. 그 바람에 휘청한 린이 겨우 무게중심을 잡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소스케의 배로 작렬하는 린의 가벼운 주먹 한 방.


“아파, 린.”

“자꾸 분위기 망칠 거야?”


짐짓 진지한 말투로 말하자 그제야 슬쩍 린의 눈치를 보는 소스케였다.


“똑바로 앉고.”


뚱한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키는 게 억지로 끌려온 티가 팍팍 나서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면서도 제법 귀여워 보였다. 린은 자기 눈에 씐 콩깍지가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거대한 애가 귀여워 보이는 일은 드문 거겠지. 거대한 애에게 먹일 케이크나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린이 등을 돌리는데 뒤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스마스.”

“응?”

“…크리스마스 둘이서만 보내고 싶었는데.”

“하아?”


말을 마친 소스케는 자기가 생각해도 조금 유치하다 싶었는지 턱을 괸 채 린의 시선을 슥 피해버렸다. 아니, 연인끼리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유치한 건 절대 아니지만. 그렇지만! 천하의 야마자키 소스케가 단지 그 이유로 며칠 내내 심통이 나 있었다니 참으로 소심하고도 귀여운 이유라고 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린이 아는 소스케는 그렇게 이벤트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이런 이유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입술이 튀어나온 거야?”


린은 소스케에게 다가가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입술을 톡 건드렸다. 사실 둘 중에 이런 이벤트를 좋아하는 쪽은 린이었고 린 역시 소스케와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부원들과 보내는 크리스마스 역시 의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접을 수 있었다. 그런데 소스케는 아니었나 보다.


“바보 린.”

“바보는 너지, 소스케.”

“그래, 내가 바보다. 유치하지.”


그대로 테이블에 푹 고개를 쳐박으며 소스케가 다시 중얼거렸다.


“너 호주 가기 전에 이렇게 큰 이벤트는 이제 없다고.”


아, 이 귀여운 놈을 어쩌면 좋아. 린은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왜 없어. 새해도 같이 맞이하고 밸런타인데이도 있고…어, 화이트데이는 챙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래도 좀 남았다고.”


린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대답했지만 풀 죽은 소스케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걸 어떻게 위로한담. 이럴 줄 알았으면 크리스마스이브 맞이 파티를 할 걸 그랬다. 모모타로가 계획한 이번 파티는 무려 크리스마스 당일 오후까지 이어지는 하드한 스케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소스케의 기분을 풀어주려면 도중에 빠져나가는 방법밖엔 없겠다 싶었다.


“선배님들, 뭐하심까! 곧 크리스마스 카운트다운 해요!”


소스케가 땅을 파든 말든, 텔레비전 앞에 모인 시꺼먼 남정네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대형 트리를 장식한 불빛이 참 아름다운데요! 앗, 말씀드린 순간 크리스마스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10, 9, 8, 7…!』

“오오!”

“내년 크리스마스는 여자 친구랑 맞이할 거야!”

『6, 5, 4…!』

“여친은 무슨. 꿈 깨라, 인마.”

“죽을래?!”

『3…!』


소스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방법밖에 없겠다 싶어진 린이 소스케 옆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린의 움직임을 느낀 소스케가 무의식적으로 린을 쳐다보았다. 린은 씩 웃으며 소스케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2…!』


다가오는 린을 쳐다보는 눈빛이 순진하다. 린은 그 눈빛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1…!』


그리고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아주 살짝.


“메─리─크리─스─마스──!”

“우오오오!”

“메리 크리스마스!”


누가 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짧은 입맞춤이었다. 소스케는 소처럼 눈만 끔뻑거리며 린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파악이 안되는 그 어리버리한 표정에, 린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실실 웃기만 하는 린의 얼굴에 약이 오른 소스케가 뒤늦게 얼굴을 붉히며 커다란 손으로 자기 얼굴을 반쯤 가려버렸다.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


아 하고 짧은 탄성까지 흘리며 아쉬워한다.


“내가 이겼지.”

“치사해, 린.”


그래도 아까보다 기분은 좀 풀렸는지 치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입가는 다정하게 올라간 소스케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소스케.”


눈까지 접어가며 린이 히히 웃는다. 그 미소에 소스케도 맥이 풀린 듯 푸후 하고 웃어버렸다.


“어. 메리 크리스마스, 린.”


녀석들이 다 곯아떨어지면 그때부터 소스케와 둘만의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보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린이 소스케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그러자 소스케의 커다랗고 따뜻한 손이 린의 뺨에 닿았다 떨어졌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따뜻한 두 사람의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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